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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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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05 10:23 조회4,5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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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중독이 자라는 사회는 개인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윗사람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복종과 수동성(passivity)을 강요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인정중독을 조장한다. 

 

슬프게도, 한국 사회에는 이 패러다임이 매우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세 가지 압력을 살펴보자.

 

1) “성공하고 싶은가? 복종하라, 희생하라, 겸손하라!

 

첫 번째 사회적 압력은 위계문화다. 

인정중독 사회는 위계질서로 사회구조를 유지한다. 

군대 문화, 다시 말해 ‘계급장 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구성원들은 수직적으로 서열화된다. 

 ‘누가 나보다 위에 있는가’, ‘누가 나보다 아래에 있는가’를 살피며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리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갑’이 구성원들을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위계적으로 하위에 있는 사람, 즉 외적 기준이 낮은 사람에게는 ‘을’의 위치가 주어진다. 

 

이 구조에서는 지배가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억울한 일이지만, 을의 개인적 감정이나 욕구는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권위자를 칭송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미덕이다. 

 

힘은 언제나 권위자의 것이고 을은 힘을 가져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를 탐내서도 안 된다. 

힘 있는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고 낮은 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비난을 피할 수 있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는다.

 

2) “인정받기 원하는가? 최고가 되라, 완벽하라!

 

두 번째 사회적 압력은 강박적 경쟁이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라는, 성공을 향한 강박적인 집착이 만연해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의 학생들은 살인적인 학업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살아남기 위해 또다시 피가 튀는 경쟁을 해야 한다. 

더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 완벽주의자들이다. 

강박적인 사람은 모든 일에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성취한 만큼이 성공이다’라고 믿는다.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생산했는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 

‘얼마나 경쟁에서 이겼는가’가 성공의 기준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개인의 행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논리다. 

행복해지려고 일류 대학도 나오고, 

돈도 벌고, 높은 자리에도 올라갔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성취를 추구하다가 오히려 행복을 잃어버린 것이다.

 

3) “어쩌면 고통이 더 좋은 것을 가져다줄 거야!

 

세 번째 사회적 압력은 고통의 미화와 강요다. 

 

우리는 얼마나 고통에 무감각해져 있는가? 

타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가학적인 드라마, 

신체가 훼손되는 영화나 게임이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TV나 인터넷에서 독설을 뿜어대는 사람일수록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고통에 무뎌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s, no gains)’는 말을 당연한 진리로 알고, 

그것을 교육 이념으로 삼기도 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받은 고통만큼 보상해주는 방식으로 양육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가혹한 사회적 압력을 받아도 모두가 인정중독에 빠지는 건 아니다. 


왜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부정적 압력을 중화시키는 보호방패(protective shield)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호방패는 사회적 압력이 주는 상처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준다. 이 보호방패는 외부의 위로자(comforter) 또는 심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위로자를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실패를 겪어 좌절하고 있거나 

타인의 공격을 받아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가족과 친구, 선생님이 변함없이 나를 위로해주고 나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면 

심리적 상처가 치유되고 자존감도 곧 회복될 것이다. 그들이 나의 보호방패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보호방패는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지켜준다. 

안정적인 자존감 아래에서 자기성찰 능력(self-reflective capacity)과 자율성(autonomy)이라는 내면의 힘이 자라난다. 이 내면의 힘이 충분히 강해진 사람은 가혹한 사회적 압력을 받아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다스릴 수 있다.

 

어릴 때는 엄마 같은 실제 외부의 인물이 이런 위로자의 역할을 하지만, 자라면서 그 대상은 내면의 위로자로 마음속에 내재화(internalization)된다. 내적인 보호방패를 가진 사람은 인정중독에 빠지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이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건강한 자기애(healthy narcissism)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 때 가정에서 보호방패를 경험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지배하려 한다. 

완벽을 요구하는 부모, 아이의 고통에 무관심한 부모, 매질을 하는 부모 역시 인정중독을 일으키는 부모다. 

 

다른 이름으로 자기애적 부모(narcissistic parents)라고 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건강한 자기애를 발전시키지 못할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을 억누르고 희생하는 성격이 형성되어 인정중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본 연재는 <누구의 인정도 아닌>(이인수, 이무석/ 위즈덤하우스/ 2017)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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