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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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기사: 자신감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상황 1
“엄마,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 봤는데 30점이야. 다른 친구들은 100점도 맞고 90점도 맞았는데 나만 30점 맞았어. 정말 속상해.” 은희(8살·가명)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은희 엄마는 딸에게 “괜찮아.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너도 노력하면 잘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은희는 “어차피 나는 친구들처럼 못해. 다른 친구들은 벌써 빼기도 할 줄 알고, 구구단도 외워. 한글도 다 알고”라고 말했다. 은희 엄마는 그런 딸을 보며 마음이 불편하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못한다”고 말하는 딸이 못마땅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선행학습을 시켰어야 했나’라며 자책도 한다. 은희 엄마는 요즘 어떻게 하면 딸을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있다.
#상황 2
7살 윤모 엄마는 최근 어린이집 참관 수업을 다녀와서 걱정이 생겼다. 집에서는 말도 잘하고 활달한 윤모가 참관 수업에 가보니 수줍음이 너무 많아 발표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영어 특별활동 시간에 단어 게임을 하는데, 아들은 답을 알면서도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이 어쩌다 발표할 기회를 주면 마지못해 일어나 개미만한 목소리로 발표를 했다. 윤모 엄마는 그런 윤모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소극적으로 보여 속상했다. 윤모 엄마는 “남자아이가 수줍음이 많아서 다른 친구들에게 치이지는 않을지, 또 다 알면서도 발표를 못하니 괜히 손해 보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은희 엄마의 고민도, 윤모 엄마의 고민도 ‘아이의 자신감’이다. 모든 부모는 시험을 못 보더라도 자신을 믿고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도전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가 자신감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부모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일단 자신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활달하고 발표를 잘하고, 무엇이든 나서서 척척 하는 아이를 보면 자신감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짜 자신감’과 ‘진짜 자신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누구의 인정도 아닌>이라는 심리서를 펴낸 정신분석학자 이인수 정신과 전문의는 “기질적으로 내성적이고 수줍은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를 노출하는 것을 꺼린다”며 “사회가 요구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이의 기질을 무시하고 부모나 선생님이 수줍어하는 아이를 자신감이 없다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겉으로는 활달하고 까부는 아이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타인에게 의존적인 아이도 있다. 말수가 적고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과제가 주어졌을 때 자신을 믿고 과제를 해내는 아이가 있다. 이런 아이는 자신감이 있다고 봐야 한다.
■ 잘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 아니다
진정한 자신감이 있으려면 ‘외적 동기’가 아닌 ‘내적 동기’에 의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엄마는 모르는 내 아이 속마음>의 저자인 김성은 한국아동상담센터 부소장은 “자신감이란 뭔가를 잘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만약 뭔가 잘해서 생기는 것들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자신감이 꺾이게 된다. 이러한 자신감은 외적인 동기에 의해 생긴 것이라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적 동기에 의한 자신감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김 부소장은 “(내적 동기에 의한) 자신감은 타고난 욕구가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생긴다”며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문제시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상황 1의 경우 부모는 아이가 받아쓰기 점수가 낮은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 넌 받아쓰기 잘하고 싶니? 연습 몇 번 하고 싶어?” 등을 물어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 뒤 아이가 하고자 하는 만큼 하도록 부모가 도와주면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너무 높은 목표를 잡으면 오히려 아이의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다. 부모가 혹시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아이를 대한 것은 아닌지, 내가 아이에게 은근히 기대를 많이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이분법적 사고 하는 경향
유치원 시기나 초등생 시기에는 자신감이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 중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전문의는 “유치원 시기나 초등학교 시기에는 나의 가치를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대상의 평가에 의존한다”며 “부모가 설명해주더라도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 이미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특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을 ‘잘한다, 못한다’ ‘완벽하다,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판단을 하려면 적어도 청소년 후반기는 돼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자신을 친구들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면,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 이 전문의는 “상황 1과 같은 상황에서 아이는 수치감과 불안을 느낄 수 있다”며 “그저 부모가 ‘하면 된다’ ‘열심히 해’ 하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아이는 더욱 불안감을 느끼고 방어기제를 작동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인정과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면 자존감이라는 ‘심리적인 힘’이 생긴다. 자존감의 바탕 위에서 아이는 위험한 세상에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세상에 나가 여러 과제에 도전하고 숙달하는 시도를 하면서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유아 및 초등생 시기에는 자신감을 얻고 잃는 과정을 반복하는 시기이다. 어른들이 마음대로 정해놓은 자신감이라는 잣대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아이가 자존감이 손상받았을 때 오히려 더 몰아붙이면 ‘자신감 있는 아이’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양선아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15923.html#csidxb637b3502473ea0a2db6a6ae319db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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